Friday, November 28, 2014

<영화 & 클래식> 글렌굴드에 관한 32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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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클래식> 글렌굴드에 관한 32개의 이야기  음악이 주는 충만 
2013/01/30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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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에서 하나의 곡에 대해 한 명의 연주자가 이렇듯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또 있을까?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에서 이 영화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글렌 굴드는 탁월하고 특이한 캐나다인 피아니스트로 젊어서 콘서트 무대에서 은퇴하고 1982년에 50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은둔적이지만 특이한 삶을 살았다. 훌륭한 음반을 내어 찬사를 듣고, 실험적인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상품시장에서 큰돈을 벌고, 전설이 될 정도로 괴상한 전화통화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닌 듯한 굴드의 천재성을 가장 적절하게 보여주는 예는 그가 연주한 바흐의 전주곡이 지구가 다른 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로서 보이저 우주선에 담겨 보내졌다는 사실이다.
프랑스계 캐나다 감독 겸 작가인 프랑수아 지라르는 드라마틱한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사실주의와 유머와 애니메이션을 섞어 이 예술가의 고뇌와 황홀경을 담은 매혹적이고 경이롭고 모험적인 작은 삽화들—32개의 짧은 이야기들로 구성한 것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재치 있게 모방한 것이다—을 이어 독특하고 다정하며 용기를 주는 전기영화를 만들어냈다. ‘어느 날의 일기’에서는 피아니스트가 연주할 때의 골격과 근육과 신경의 움직임을 X 레이 필름으로 보여주며, ‘트럭 정류장’에서는 한 카페에서 주변 대화들을 가지고 머릿속에서 흥겨운 리듬으로 편곡하고 있는 굴드를 보여준다. 콜름 푀르는 이 음악가의 재능과 고유함이 모두 드러나도록 흡인력 있는 연기를 펼쳤다. 굴드의 레퍼토리로 구성한 사운드트랙도 굉장하다.'



일전에 소개한 '레드 바이올린'을 연출한 '프랑스와 지라르'가 감독했다. 32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맨 처음과 맨 나중에 반복하여 제시되는 주제 선율과 중간의 30개의 변주곡으로 짜여진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구성을 그대로 본딴 형식으로 짜여져 있다.

영화의 시작과 끝은 끝없이 펼쳐진 설원으로 같은 장소이다. 첫 장면은 오늘의 글렌굴드를 있게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흘러나오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건반 악기의 구약성서라 불리우는 평균율 클라비아곡집이 흘러 나온다. 평균율 클라비아곡집은 '바흐 이전의 침묵'에서 바흐가 아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칠 때 나왔던 곡이기도 하다. 바흐에서 시작해서 바흐로 끝나고 있다. 그의 삶과 지인 들의 인터뷰,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천재이자 기인이며 바흐의 새로운 해석자 글렌 굴드를 여러 측면에서 조명하고 있다. 에피소드마다 그의 연주곡이 배경음악 등으로 흘러 나온다. 바흐, 베토벤, 쇤베르크, 힌데미트 등의 음악이 쉴새 없이 나온다.

항상 꾸부정한 자세로 허밍을 하면서 연주한 글렌굴드


허공에 지휘하듯 하면서 음악에 몰입되곤 했는데 영화에서도 몇 번 등장한다.

연주 전에 항상 뜨거운 물에 손을 담구었다고 한다.(영화에 이 장면이 나온다)

그의 스테인웨이(몇 억의 고가) 피아노와 평생 연주할 때 가지고 다니던 의자


실제 스토리 위주의 영화에 익숙한 나로서는 클래식을 다룬 영화라고 해서 보긴 봤지만, 이 영화에 대한 감상평은 나의 좁은 식견을 넘어서는 일이다. 네이버에 소개된 '글렌굴드'에 관한 내용으로 맺고자 한다. 

'글렌 굴드는 1932년 9월 25일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음악교사일을 했고, 어머니는 굴드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굴드가 세 살 되던 해 그는 악보를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소위 절대음감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다섯 살 때 그는 작곡을 시작했고, 가족과 친구들을 위한 조그마한 작품을 연주했다. 여섯 살 때에 굴드는 요제프 호프만의 마지막 토론토 연주회에 참가할 수 있었는데 이 연주회는 소년 굴드에게 깊고 중요한 인상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10살이 되던 해에 굴드는 토론토의 로얄 콘서바토리에서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굴드는 또한 프레데릭 실베스터에게 오르간을, 레오 스미스에게 음악이론을 배웠다. 그는 12살 때인 1944년, 음악원을 수료하고 키바니스 음악 페스티벌의 피아노 부문에서 우승하였다. 1945년에는 로얄 콘서바토리의 독주자 종합시험을 통과하여 완전한 콘서트 피아니스트의 수준에 도달했음을 인정받게 된다. 굴드가 14살 되던 1946년 그는 음악이론 시험에 합격하고 최고 성적으로 졸업장을 수여받았다.
1955년 1월 11일 저녁 굴드는 뉴욕 데뷔 연주를 가졌다. 글렌 굴드는 뉴욕 연주회 다음날 컬럼비아 음반과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1955년 6월의 어느 한 주 동안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컬럼비아 녹음부와 함께 뉴욕 이스트 30번가에 있는 오래된 교회에서 녹음 했다. 이때에 선보인 굴드의 기괴한 모습은 유명한 일화가 되었다.
굴드는 외투에 베레모를 쓰고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까지 끼고 나타났다. 그의 ‘장비’는 통상적인 악보 뭉치와 수건 묶음, 큰 생수 두 병, 작은 알약 다섯 병, 그리고 이후 굴드가 항상 가지고 다니던 애용품으로 유명해진 피아노 의자였다. 이 의자는 다리가 모두 고무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연주할 때 몸의 각도에 따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었다. 연주에 들어가기 전 굴드는 두 손을 20분간 더운 물에 담그고 자신이 가져온 수건으로 손을 닦아 냈다. 녹음이 진행되는 동안 굴드는 도취된 상태에서 입을 벌리고 노래를 불렀으며 몸을 앞뒤로 구부렸다 폈다를 반복했다. 컬럼비아의 녹음 기술자들은 굴드의 허밍을 녹음하지 않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 음반은 레코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음반 중의 하나가 되었고 발매 당시에도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오늘날까지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굴드의 바흐 연주는 당대의 음악적인 분위기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1950년대는 낭만주의 음악들이 인기를 누렸고, 당대의 뛰어난 피아니스트들이 낭만주의자들의 기교가 넘치는 연주를 선호했다. 바흐 연주에는 뛰어난 업적을 남겼지만 글렌 굴드가 선택한 낭만주의 음악 연주를 들어보면 상대적으로 흥미롭지가 않다. 이러한 풍토 속에서 바흐를 연주하는 것은 새로운 모험이었고, 영미권에서는 지루해하던 바흐의 연주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작업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굴드는 농담처럼 자신의 연주를 <굴든베르크 변주곡>이라고 불렀다.(글 이상용 :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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