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November 17, 2014

모차르트 "코지 판 투테"(Mozart - Così Fan Tutte (2006))


Mozart - Così Fan Tutte (2006)



source: http://youngadult.egloos.com/viewer/1171813

낭랑 앙상블의 기묘한 매력: 모차르트 "코지 판 투테" - 존 엘리엇 가디너, 잉글리쉬 바로크 솔로이스츠, 몬테베르디 합창단, 1992년 실황(Arch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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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그리고 이 "코지 판 투테"와 "마술 피리"를 가리켜 일반적으로 모차르트의 4대 걸작 오페라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도 "코지"는 통상적인 지명도가 여타 작품들보다 많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어찌보면 그보다 전에 작곡된 "후궁으로부터의 탈출"에조차도 인지도의 측면에서 밀리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죠. 작곡된 계기가 "피가로의 결혼" 중에 등장하는 "여자란 다 그래('코지 판 투테')"라는 가사를 듣고 뭔가 느낀 바가 있으셨던 요제프 황제가, 모차르트와 대본작가 다 폰테에게 그 가사를 모티브로 하는 오페라를 써보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작품의 내용 자체는 사실 그저 그런 수준입니다. 여인들의 정조를 남정네들이 시험해본다, 라는, 요즘 같으면 페미니스트들이 벌떼같이 들고 일어날 그런 소재에다가 일일연속극을 방불케하는 치정극의 요소를 합치고 거기다 코미디를 조금 첨가한 게 바로 "코지 판 투테"의 줄거리인 것이죠.

하지만 줄거리의 지리멸렬함이라는 단점은 높은 음악적 완성도가 발하는 매력이라는 장점 앞에 완벽하게 가려집니다. 모차르트가 죽기 1년 전 쯤, 그러니까 테크닉의 측면에서나 경륜의 측면에서나 모두 완숙의 경지에 달해있는 시점에서 쓰여진 작품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음악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심리변화를 상세하게 표현하고 있는 점과, 중창의 앙상블에서 느껴지는 음악적 성취는 "코지 판 투테"를 당당한 걸작 오페라의 반열에 올려놓기에 충분한 요인입니다. 물론 이런 장점들을 한 두번 들어서 바로 깨닫기란 무척 힘든 일입니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들어보겠다며 몇번이나 다짐을 하고 정좌하여 음악을 듣다가 졸았던 일이 몇번이었던가요. 하지만 여러번 듣다가 졸다가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이 작품만이 보여줄 수 있는 기묘한 매력에 흠뻑 빠져든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군요. 칼 뵘이 어째서 "코지 판 투테"를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였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 해두고 음반 자체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일단 가디너가 지휘를 맡고 잉글리쉬 바로크 솔로이스츠가 연주하는 만큼 당연히 연주 방식은 원전연주입니다. 사실 그 많은 "코지" 음반들 중에 굳이 이걸 고르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음반을 구매할 당시 제가 가디너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에 푹 빠져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꼭 그렇게만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그토록 훌륭하게 베토벤 교향곡을 원전 연주방식으로 지휘한 가디너'의 음악적 역량을 신뢰하고 있었기에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이었지요. 음반을 구매하고 들어본 지 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평가해보면, 가디너에 대한 저의 신뢰는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전집에 대해서는 이제 좀 많이 삐딱한 시선을 지니게 되었지만, 아직 이 "코지 판 투테"에는 그런 시선을 가질 생각이 그다지 없습니다. 경쾌한 속도감과 명료한 음색이라는 원전 연주의 강점이 "코지" 자체가 지니고 있는 앙상블의 매력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한편, 1992년 이탈리아 페라라에서의 실황이라는 연주 당시의 특성 덕분에 지나치게 학구적으로 매달리면 나타나게 되는 딱딱함 내지는 건조함도 많이 희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가수들 역시 좋은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코지 판 투테"가 엄연한 오페라 부파인 이상, 작품 전체에 걸쳐서 희극적이고 낙천적인 분위기는 필수불가결합니다. 가디너가 선택한 가수들은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고 그런 분위기를 잘 표현해내는 한편, "코지"만이 지닌 앙상블의 매력을 낭랑하게 들려주는 호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여한 가수 모두가 성악 테크닉의 측면에서나 인물의 심리 묘사의 측면에서나 딱히 어디 흠 잡을데가 없이 훌륭한 가창을 들려줍니다. 그래도 굳이 아쉬운 부분을 파헤치다시피 집어낸다면, 도라벨라와 피오르딜리지 자매 두 사람이 지니고 있는 각자만의 고유한 성격이 주는 차이감이 좀 무덤덤하게 처리된 듯하다는 것을 지적해야 하겠습니다. 자매가 함께 중창을 할 때는 더없이 완벽하지만, 각자 따로 따로 아리아를 부를 때는 가끔씩은 누가 도라벨라이고 누가 피오르딜리지인지 잘 구분이 안 갈 때가 있더군요. 적어도 제가 마음 속으로 지니고 있던 자매 각자의 이미지에 비추어볼 때는 그렇더라는 얘기입니다.

여하튼 가디너의 "코지 판 투테"에 대해서는 작품 자체가 지닌 매력을 잘 살려주고 있는 좋은 음반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낭랑하게 울려퍼지는 성악과 관현악의 앙상블이 가져다주는 "코지"만의 기묘한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싶으시다면 꼭 들어보셔야 할 음반입니다. 마지막으로 첨언하자면, 실황을 녹음하고 DDD로 리마스터링한 물건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사양이 평범한 수준보다 좀 아래인 제 미니 콤포넌트에서는 소리가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작게 들려오는 감이 있었습니다.
이글루스 가든 - 클래식 음악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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